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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입니까?” “아니오”…발달장애인은 그렇게 법정까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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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4월20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린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2023년 4월20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서 열린 4·20 장애인차별철폐 투쟁결의대회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중증 발달장애인인 ㄱ(28)씨는 전세 사기를 벌인 혐의(사기)로 기소돼 지난달 19일 처음 법정에 섰다. ㄱ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엘에이치)에 자기 명의로 된 서울 강서구의 한 주택을 임대해주기로 계약을 맺고 1억2천만원을 받았는데, 그 주택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이전 세입자가 점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지적 장애를 지닌 ㄱ씨가 직접 복잡한 임대 절차를 고려해 계획적으로 보증금을 가로챘다고 보기에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았지만, 경찰과 검찰은 ㄱ씨 장애를 고려하지 않고 사건을 재판에 넘겼다. 경찰 첫 조사에서 ‘단 한번’, “발달장애인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ㄱ씨가 “아니요”라고 잘못 진술한 것이 화근이었다.

상황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 수사에 있어, 장애 여부를 확인하는 기초적인 절차조차 허술하게 운영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달장애인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법령에 따라 지원센터 담당자나 보호자 등 보조인 도움을 받도록 하는데, 수사기관이 장애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면 이런 제도도 무용지물이다.

경찰과 ㄱ씨 쪽 변호인 설명을 15일 들어보면, ㄱ씨는 2015년 8월 지적장애 등록을 한 발달장애인이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장애를 확인하는 절차는 구두 질문에 그쳤다. ㄱ씨 법률 대리를 맡은 박민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경찰 최초 조사 당시 수사관이 ‘당신은 발달장애인입니까?’라고 형식적으로 물었고, ㄱ씨가 정확한 의미를 몰라 ‘아니요’라고 답한 뒤로 조사 및 수사 과정에서 ㄱ씨의 장애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사 과정에서 ㄱ씨 장애가 드러날 수 있었던 기회도 무시됐다. 가령 보증금을 못 받은 세입자는 경찰 참고인 조사에서 “ㄱ씨가 지적 능력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를 듣고도 ㄱ씨 장애를 다시 살피지 않았다. 사건을 수사한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ㄱ씨가 조사에 앞서 스스로 발달장애인이 아니라고 진술했고, 조사 과정에서도 의사소통에 특별한 문제가 없어 일반 조사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경찰은 ㄱ씨의 지적 능력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는데도 추가 조사를 하지 않은 채 사건을 송치했고 검찰은 기계적으로 기소해, ㄱ씨가 중증 지적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수사 전반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짚었다. ㄱ씨는 결국 수사 과정 내내 발달장애인 권리인 보조인 도움도 받지 못했다.

뒤늦게 사정을 알고 법률 대리에 나선 변호인단은 ㄱ씨의 남편 ㄴ씨가 부동산 계약, 임대 계약을 주도하는 등 ㄱ씨를 범행에 이용한 정황을 포착했다. 정작 ㄱ씨는 문제가 된 주택에 가본 적조차 없었다. ㄴ씨는 현재 다른 범죄로 수감 중인 상태로, ㄱ씨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받은 바 없다.

이는 비단 ㄱ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3월부터 5월까지 2개월간 교정시설에 수용된 발달장애인 127명을 면담 조사한 결과를 보면, ‘발달장애’라는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경우는 39명(30%)에 그쳤다. 애초 구두 질문만으로 장애 유무를 판단하기 어려운 셈이다. 조사를 진행한 최은숙 인권위 조사관은 한겨레에 “수사기관이 형식적인 질문만이 아니라 장애인 복지 카드 확인 등 여러 방식으로 장애 유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최초 수사 단계에서부터 국선변호인과 진술 조력인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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