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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A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청각장애인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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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A TV의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연출 김윤진, 극본 김민정)의 원작은 일본 TV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각본 키타카와 에리코·제작 TBS 텔레비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그림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차진우(정우성 분)와 목소리로 마음을 표현하는 정모은(신현빈 분)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그린 힐링 멜로드라마이다.

제주도 바닷가에서 처음 만난 차진우와 정모은. ⓒENA
제주도 바닷가에서 처음 만난 차진우와 정모은. ⓒENA


청각장애인 차진우는 보육원에서 자랐는데 열병으로 청력을 상실하였다. 미술 수업은 유일하게 통역이 필요 없는 시간이기에 그림을 친구이자 삶 자체로 여기며 살아왔다. 자신만의 고요한 세상에서 그림에 집중하며 화가가 된 인물이다.

정모은은 스튜어디스였는데 어느 날 난기류를 만나 헤매다가 인생의 난기류로 스튜어디스를 그만두었다. 부모님에게는 공시 준비를 한다고 말하고 사실은 배우수업을 하고 있다. 정모은을 처음 본 차진우는 배우냐고 물었다. 수어를 모르는 정모은은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차진우는 수첩을 꺼내서 ‘배우’라고 썼다. 정모은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엑스트라 또는 대사 한 줄 없는 단역이나 겨우 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단역 또는 엑스트라라고 불렀는 데 그를 배우라고 불러 주다니 감개무량이었다.

그래서 정모은이 차진우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처음 배운 수어가 ‘배우’라는 단어였다.

차진우는 화가이므로 어느 가수의 앨범 그림을 그려 주었다. 가수는 고맙다고 차진우에게 콘서트 초대권을 주었다. 콘서트 티켓을 선물로 받은 차진우는 아트 빌딩 카페에서 알바로 서빙을 하는 정모은이 노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에게 선물이라고 주었다.

정모은이 티켓을 받고 청각장애인은 음악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차진우가 떨리는 진동으로 안다고 하자 정모은은 콘서트에 같이 가자고 했다. 차진우가 싫다고 했으나 정모은이 한사코 같이 가자고 해서 차진우도 마지못해 승낙은 했다. 그러나 콘서트라니, 차진우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고 더구나 여자 정모은과 같이 가는 콘서트라니 가슴이 설레었다.

차진우가 새로 이사 간 집 옆에서는 할머니(이주실 분)가 손자 준이와 살고 있었다. 할머니가 준이와 지나가다가 차진우에게 인사를 했다. 차진우가 소리를 못 듣는다고 노트에 썼다.

할머니는 “귀가 먹었는가 보네”라고 했다. 준이가 그 말을 듣고 “귀가 먹었어요? 귀를 어떻게 먹어요?”라고 물었으나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고 준이를 끌고 가 버렸다.

차진우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준이가 아저씨는 고양이를 뭐라고 부르냐고 물었다. 차진우는 입 모양을 보고 대략의 말은 알아들었다.

차진우는 “오른 주먹의 5지를 펴서 등이 입으로 향하게 하여 입 왼쪽으로 두 바퀴 돌린다.”는 고양이라는 말을 했으나 어린 준이는 그것이 고양이 이름인 줄 알고 고양이만 보면 엄지를 코앞에서 빙빙 돌리며 고양이를 부르곤 했다.

차진우는 저녁 6시 반에 정모은과 콘서트를 보러 가기로 약속을 했으므로 그 안에 필요한 일을 마쳐 놓으려고 캔버스를 열심히 만들었다.

준이가 할머니와 지나가는데 동네 여자가 소문을 물어 와서 할머니를 잡아끌었다. 할머니는 준이에게 먼저 집에 가 있으라고 했는데 준이가 차진우의 고양이를 보고는 오른손 엄지를 코앞에서 빙빙 돌리며 고양이를 따라갔다.

차진우는 캔버스를 다 만들어서 세워놓고 화구상에 가서 화구도 사다 놓고 시계를 보았다. 콘서트에 갈 시간이라 뭘 입고 갈까 옷을 고르다가, 세워놓은 캔버스 아래서 아기 운동화를 보았다. 이게 누구 운동화일까? 차진우는 방안을 두리번거리다가 한쪽 구석에서 잠든 준이를 보았다.

차진우는 나갈 시간이 다 되었으므로 잠든 준이를 깨웠다. 어린아이가 자다가 일어났음에도 차진우를 보고는 배시시 웃었다. 차진우도 같이 웃었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준이를 부르는 할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 차진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준이는 할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듣자 울음을 터뜨렸다. 차진우는 준이가 왜 우는지 그 이유를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차진우의 집 밖에는 할머니와 경찰이 와 있었다. 경찰이 문을 두드려도 차진우가 반응이 없자 경찰은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스위치를 하나 발견했다. 경찰이 스위치를 눌렸다. 그 스위치는 현관 초인등이었다.

청각장애인들은 현관 초인벨 소리를 듣지 못하므로 그 대신 초인등을 설치한다. 경광등이 반짝이면 청각장애인도 불빛은 볼 수가 있으므로.

차진우 미성년자 약취 유인 혐의로 체포. ⓒENA
차진우 미성년자 약취 유인 혐의로 체포. ⓒENA


차진우가 불빛을 보고 현관문을 열었다. 경찰이 차진우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준이를 안고 나왔다.

“당신을 미성년자 약취 유인 혐의로 체포합니다.”

차진우는 집 앞에서 웅성거리는 이웃들의 시선을 둘러보았다. 차진우는 영문을 알 수 없지만, 적의에 찬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준이가 고양이를 따라갔다가 잠이 들었다고 충분히 말 할 수 있을 텐데 드라마를 위해서인지 준이는 울기만 했고 차진우는 경찰서로 끌려갔다. 차진우는 졸지에 아동 유괴범이 된 것이다.

경찰은 차진우를 경찰서로 데려왔으나 차진우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차진우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정모은과 약속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차진우는 책상을 두드렸다. 형사가 차진우를 바라보자 차진우는 필담이 가능하다고 써서 형사에게 보여 주었다.

형사는 수어통역사가 오고 있으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인권! 인권을 위해서 경찰 직무수칙 제75조에 장애인을 조사할 때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보조인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되어 있어요.”

이미 정모은과의 약속 시간은 지나갔기에 차진우는 너무 화가 나서 쾅쾅 책상을 두드렸다. 담당 형사는 기다리라고만 하고는 여전히 다른 일을 했다.

수어통역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차가 너무 막혔어요. 청각장애인은 어디 있어요?”

수어통역사가 와서 통역을 했다. 차진우는 애가 집에 들어 온 것을 몰랐다고 했다. 5시간 동안이나 아이의 신발이나 유치원 가방을 감춰 놨다는 거예요? 차진우는 아이의 신발이 캔버스 나무 밑에 깔려 있어서 몰랐다고 했다.

경찰 조사에서 차진우는 아이를 일부러 유인 약취한 것이 아니므로 풀려났다. 그러나 이미 정모은과 콘서트에 같이 가기로 한 시간은 한참이나 지나가 버렸다.

차진우를 기다리던 정모은은 차진우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차진우는 답이 없었다. 차진우는 휴대폰을 집에 두고 왔던 것이다.

차진우는 형사에게 휴대폰을 빌려서 정모은에게 경찰서에 있다는 문자를 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차진우가 정모은의 전화번호를 알 수는 있었을까. 전화번호가 휴대폰에는 입력되어 있겠지만 대부분이 전화번호를 외우지는 못한다. 휴대폰에 전화번호가 입력되면서 더 이상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차진우는 정모은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음에 절망했다. 처음으로 여자와 만나는 시간이었는데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하나.

다시 만난 차진우와 정모은. ⓒENA
다시 만난 차진우와 정모은. ⓒENA


차진우가 절망해 있을 때 정모은이 나타났다. 차진우는 처음부터 나랑 같이 콘서트에 가자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모은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약속 시간에 못 와서 미안하다는 거죠?

정모은은 차진우의 손을 자기 목에다 갖다 대었다. 그리고 정모은은 노래를 불렀다.

그동안 차진우는 노래를 눈으로 읽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세상과 단절되는 시간이 찾아왔다. 눈을 깜박이는 순간은 깜깜했던 것이다. 그 순간은 노래를 읽을 수가 없었으므로. 몇 초에 한 번씩 세상이 끊어졌다 이어지는 그 짧은 시간 사이 손끝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제 노랫소리를 진동으로 느낄 수가 있으니까 더는 깜깜한 절망이 아니었다.

차진우의 손끝에 전해진 정모은의 노랫소리. 정모은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는 아무 걱정 없이 눈을 감도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정모은은 우리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다고 했다. 차진우와 정모은의 서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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